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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셸 뒤샹의 '샘'이 예술인 이유('변기' 아니라구요)

"마르셸 뒤샹의 '샘'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나요? 생각과 그 이유를 말해보세요"

예술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한번쯤은 마르셸 뒤샹의 '샘'을 만나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저는 스무살 때 미술대학 비실기 전형 면접에서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떨어졌지만...) 면접관은 '샘' 사진을 보여주고는 이 예술작품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었습니다. 

 

<Fountain>, Marcel duchamp, 1917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왠지 예술이라고 해야할 것 같긴 했지만 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답변하기에도 이유가 마땅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제가 답했던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예술입니다. 작가가 깊은 고민의 결과물로서 만들어낸 작품이며 대단한 발상의 전환을 만들어 냈습니다." 모호했죠.

 

몇 년이 흐른 지금 저는 그 모호한 답변이 아닌 몇 가지 이유를 들어서 마르셸 뒤샹의 '샘'이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내용들은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배운 내용입니다. 글로 정리해두고 나의 지식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머트 씨의 작품 [샘]은 부도덕한 작품이 아니다" - 마르셸 뒤샹

먼저 작품의 탄생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샘'은 간단해 보이는 작품이지만 뒤에 숨겨진 이야기가 많습니다. 마르셸 뒤샹은 1916년 뉴욕에서 열리는 한 전시회에 상점에서 구매한 변기에 'R.Mutt'라는 싸인을 넣어 출품합니다. 'R.Mutt'는 제조업자의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당시 전시회에서는 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샘'은 전시를 모욕했고 예술을 오염시켰다는 평을 받으며 전시장에 오르지 못합니다. 그러자 작품의 숨겨진 작가 마르셸 뒤샹은 자신이 'R.Mutt'임을 속이고 작품에 대한 글을 투고하기까지 합니다. 

 

"변기가 부도덕하지 않듯이 머트 씨의 작품 '샘'은 부도덕한 작품이 아닙니다. 배관 수리 상점 진열장에서 매일 보는 제품일 뿐입니다. 머트씨가 그것을 직접 만들었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대상을 선택했습니다. 일상 속 평범한 사물이 실용적인 특성을 버리고 새로운 목적과 시각에 의해, 즉 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생각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 마르셸 뒤샹

 

'샘'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다섯가지 이유

그가 주장했고, 이후에 예술계에서 이 작품에 대해 평가하는 관점이 들어가 있는 글입니다. 정리해보자면 '샘'은 다섯가지 이유에서 예술이라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1. 예술의 무목적성 - 예술이 되는 것은 오직 예술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 수 있다. 

2. 발견된 오브제 - 예술의 오브제는 창조의 결과가 아니라 우연히 발견해낸 오브제일 수 있다. 

3. 기성품 - 작가의 손에 창조된 것이 아닌 공장에서 만들어진 기성품 역시 예술이 될 수 있다. 

4. 표현의 즉흥성 - 깊은 생각 끝에 나오는 것이 아닌 즉흥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도 예술의 표현이 될 수 있다. 

5. 예술의 비대상성주의 - 예술이 되는 주제, 소재,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샘'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고 새로운 갈래를 만들어냅니다. 누구나 예술 작가가 될 수 있고, 어떤 것도 예술품이 될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삶 어디에서도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탄생과정에 이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추방된 전시작품을 다시 전시장으로 불러온 인물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가 아니었더라면 '샘'이 빛을 못 보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입니다. 

 

좌: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 우:<샘, 마르셸 뒤샹이 도운 레디메이드의 사진>,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1917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아모리 쇼의 부회장이자 291화랑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사진가였으며 현대 미술가의 전령사,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사진계의 인물입니다. 그는 쫓겨난 작품을 291화랑으로 가져와 사진으로 남깁니다. 그는 이 작품이 예술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와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를 겹쳐 봤습니다. '사진'을 놓고 예술인지 아닌지에 대해 한참 논쟁이 오갔던 시기에,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는 이유와 위에서 봤던 '샘'이 예술인 이유가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오직 예술을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며 우연히 발견한 피사체의 포착입니다. 또 작가가 직접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찰나의 감각과 아이디어로 피사체를 담아냅니다. 카메라에 찍히는 피사체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유튜브의 시대, 브이로그의 시대, 모두의 삶이 예술이 된다.

우리는 지금 모두의 삶이 예술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하루를 보내는 모습들, 누군가와의 대화, 그들이 일을 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일상을 파고들어와 포착한 이미지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거의 100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 포착한 한 개념이 현재 우리의 모습에서 발견된다는 점이 참 놀랍습니다. 

 

'변기' 아니라구요...

 

글의 처음에서 말했던 면접에서는 떨어졌었습니다. 이후에 다른 학교의 예술관련 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시각예술xxxxx'이라고 하는 한 수업에서 강의를 진행했던 시간 강사님의 말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첫번째 시간 오티 때 강사님은 서양미술사 전체를 언급하며 PPT 200 장을 넘기는 노~오올라운 수업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참 많은 작품들에서 '어??? 뭐라고?'하며 의아해 했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는 '샘'을 언급할 때 였습니다. 

 

"아...그... 뭐죠? 그... '변기'!" 

 

'샘'대 신 '변기'라고 불렀던.... 작품명을 몰랐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바로 뒤이어 말씀해주시는 이 작품이 예술로 인정 받은 이유에서도 충격을 받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심지어 지금은 그 이유가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 때 많은 걸 느꼈습니다. 나중에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알려줄 때는 꼭 최선을 다해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제 글에서도 틀린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가볼 지도 모르는 이 짧은 글에 사실 여부를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정보를 찾아다녔고, 나름 공부해가며 작성했습니다. 혹시라도 다른 의견이 있으시거나, 사실 관계를 바로 잡아야한다면 꼭 말씀해주세요.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될겁니다. 감사합니다.

 

참고:

책 / 진동선 - '사진 예술의 풍경들'

사진예술의 풍경들
국내도서
저자 : 진동선
출판 : 문예중앙 2013.09.16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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